리더십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라구요?

Daniel · · 조회 21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라구요?

평가 면담에서, 이직 면접에서, 때로는 사내 문서 한 칸에서 이런 걸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이 일에 왜 사람이 필요한지, AI가 왜 못 하는지 말해보세요."

한 회사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쇼피파이 CEO 토비 뤼트케는 2025년 3월 사내 메모에서 인원을 더 요청하기 전에 왜 AI로는 그 일을 할 수 없는지 먼저 증명하라고 못 박았고, AI 활용 여부를 인사평가 항목에까지 넣었습니다. 블룸버그도 2026년 1월 이 흐름을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증명해야 하는 채용이라는 제목으로 다뤘고요. 국내도 비슷합니다. 국내 기업 153곳이 답한 원티드랩의 2026 채용 트렌드 서베이에서는 'AI 확대에 따른 인력 축소와 질적 채용 전환'을 꼽은 응답이 63%, 'AI 리터러시 검증'이 46%였습니다. 153곳 자체 설문이라 전체를 대표한다고 하긴 어렵지만, 이 요구가 이미 채용 실무의 언어로 들어와 있다는 건 분명해요.

이런 이야기가 커뮤니티에 올라오면 댓글은 대체로 두 갈래로 갈립니다. 실무자 입장에서 난감하다는 토로가 한쪽이고, 그 소명서마저 AI한테 쓰게 하라는 농담이 다른 한쪽이에요. 둘 다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이 요구가 조직의 인원 계획에서 시작됐더라도, 결국 답을 준비해야 하는 건 내 자리에 대해서입니다. 그리고 그때 뭐라고 말하느냐가 생각보다 크게 갈립니다. "고객 관계는 AI가 못 합니다", "최종 판단은 사람이 해야 합니다" 같은 문장이 먼저 떠오르실 텐데, 그 문장은 안 쓰시는 게 좋습니다. 이 글에서는 왜 그 답이 오래 못 버티는지, 대신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그리고 직무별로 바로 고쳐 쓸 수 있는 문장까지 정리해보겠습니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일" 목록에 내 자리를 걸어도 되나요?

그 목록에는 유통기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사람의 몫으로 남을지를 미리 목록으로 확정하는 방식은 지금까지 여러 번 크게 빗나갔고, 목록에 자리를 걸어두면 기술이 좋아질 때마다 내 근거가 같이 줄어듭니다.

가장 유명한 예측부터 볼게요. 2013년 옥스퍼드의 프레이와 오스본은 미국 일자리의 47%가 20년 안에 자동화 위험에 놓인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ITIF가 2013년부터 2021년까지의 실제 고용 자료와 이 예측을 대조해봤더니 순위가 예측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자동화 위험 1위로 분류됐던 보험 언더라이터는 고용이 오히려 16.4% 늘었고, 가장 안전하다고 분류됐던 레크리에이션 치료사는 8.9% 줄었습니다. 자동화 위험 점수와 실제 일자리 감소의 상관관계는 0.26에 그쳤고요.

반대 방향의 예측도 똑같이 빗나갔습니다. 2016년 제프리 힌턴은 딥러닝이 곧 영상 판독을 대체할 테니 방사선과 전공의를 그만 뽑으라고 말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방사선과 자리는 줄기는커녕 늘었고, 힌턴 본인도 그때 너무 넓게 말했다고 정정했습니다. 이 경위는 포춘의 2026년 후속 보도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한쪽은 "없어진다"가 틀렸고, 다른 한쪽은 "곧 없어진다"가 틀렸습니다. 여기서 얻을 결론은 AI가 별거 아니라는 게 아니에요. 어떤 일이 끝까지 사람 몫으로 남을지를 목록으로 미리 정해두는 방식 자체가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이 방어 반사는 굉장히 자동으로 나옵니다. 최근 미국 테크 대기업 익명 커뮤니티에 "AI가 내 일을 나보다 잘한다는 걸 인정한다, 내 일은 없어져야 한다"는 글이 올라온 적이 있어요. 댓글은 거의 전부 목록으로 채워졌습니다. "내 일은 대인관계라 AI가 못 한다", "내 일은 조직과 사람 관리라 AI가 못 한다." 위협을 느끼는 순간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 중에서 AI가 아직 못 하는 항목을 찾아 거기에 자리를 겁니다.

문제는 그 자리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 위에 있다는 점이에요. 모델이 한 번 업데이트되면 어제의 근거가 오늘 사라집니다. 자리를 잃는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다만 "이건 AI가 못 합니다"로 세운 방어선은 내가 관리할 수 없는 쪽에서 계속 좁아지고, 좁아질 때마다 다시 설명해야 합니다. 근거를 남의 손에 맡겨두는 셈이에요.

그럼 그 소명서에 뭐라고 써야 하나요?

AI의 한계가 아니라, AI를 써서 내가 어디까지 만들 수 있는지를 써야 합니다. 두 문장을 나란히 놓고 보면 차이가 바로 보입니다.

❌ "AI가 이걸 못 해서 제가 필요합니다."

✅ "AI를 써서 이 일을 여기까지 끌어올릴 수 있어서, 이 일에 제가 또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 문장은 AI가 좋아질수록 약해집니다. 두 번째 문장은 AI가 좋아질수록 더 큰 결과를 약속할 수 있어요. 같은 자리를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완전히 다른 질문에 답하고 있는 겁니다. 앞 문장은 "AI가 여기까지밖에 못 하나요?"에 답하고, 뒤 문장은 "이 일을 얼마나 더 잘하게 만들 수 있나요?"에 답해요.

두 번째 문장을 채울 때 재료는 두 가지면 충분합니다. 하나는 AI에 넘길 일입니다. 자료 수집, 정리, 분류, 초안처럼 반복되는 부분이요. 다른 하나는 그렇게 확보한 시간으로 밖에서 커질 결과입니다. 여기가 핵심이에요. 안에서만 확인되는 장점, 그러니까 "제가 더 꼼꼼히 챙기겠습니다" 같은 말은 읽는 사람이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반면 고객을 몇 번 더 만나는지, 검토가 며칠 짧아지는지, 같은 문제가 얼마나 덜 반복되는지는 밖에서 보입니다.

예를 들어 자료 모아서 보고서 쓰는 일이라면 이렇게 됩니다. "자료 모으는 건 AI한테 맡기고, 저는 그 자료로 우리 서비스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고객 커뮤니케이션을 5배 늘리겠습니다." 무엇을 지켰는지가 아니라 무엇이 몇 배가 되는지를 말하는 문장이에요.

제 직무에서는 어떻게 바꿔 쓰면 되나요?

직무마다 AI에 넘길 일과 내가 책임질 판단이 다릅니다. 아래 표에서 자기 직무에 가까운 줄을 찾아 그대로 옮겨 쓰신 다음, 숫자만 지금 조직에서 실제로 재고 있는 숫자로 바꾸시면 됩니다. 표의 숫자는 문장 형태를 보여주기 위한 예시지 어떤 조사 결과가 아닙니다.

직무 ❌ 방어하는 소명 ✅ 결과를 보여주는 소명
기획·PM "요구사항 정리는 AI가 못 합니다." "자료 조사와 초안은 AI에 넘기고, 저는 결정이 걸린 지점만 골라 정리해서 기능 하나가 결정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2주에서 3일로 줄이겠습니다."
마케팅 "브랜드 감각은 AI가 못 냅니다." "소재 변형은 AI로 뽑고, 저는 계속 밀어야 할 메시지를 골라서 한 주에 돌리는 유효 실험을 2건에서 10건으로 늘리겠습니다."
영업 "고객 관계는 사람만 만들 수 있습니다." "기업 조사와 제안서 초안은 AI가 하고, 저는 고객을 직접 만나는 데 시간을 써서 이번 분기 미팅을 지금의 두 배로 만들겠습니다."
개발 "설계는 AI가 못 합니다." "반복 구현은 AI로 줄이고, 저는 장애로 번질 수 있는 선택을 먼저 잡아서 배포 후 긴급 수정 건수를 절반으로 낮추겠습니다."
디자인 "디자인 감각은 대체할 수 없습니다." "시안 변형은 AI로 확보하고, 저는 고객 반응으로 검증할 안을 골라서 실제로 테스트까지 가는 시안 수를 매달 3배로 늘리겠습니다."
고객지원 "감정이 필요한 응대는 AI가 못 합니다." "정형 문의는 AI가 먼저 받고, 저는 이탈 위험이 큰 고객에게 붙어서 해지 직전 고객과의 통화를 주 5건까지 만들겠습니다."
데이터·분석 "해석은 사람이 해야 합니다." "집계와 시각화는 자동화하고, 저는 어떤 질문을 먼저 풀지 정해서 분석 결과가 실제 의사결정에 쓰이는 비율을 끌어올리겠습니다."
인사 "면접은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서류 정리와 일정 조율은 AI로 줄이고, 저는 입사 후 성과를 가르는 질문을 다듬어서 현업 관리자와의 사전 정렬 미팅을 채용 건당 2회로 늘리겠습니다."
재무·회계 "최종 검증은 사람이 합니다." "정형 대사와 정기 보고서는 자동화하고, 저는 이상 징후를 먼저 골라내서 결산 마감을 5일 앞당기겠습니다."
운영 "예외 처리는 AI가 못 합니다." "반복 대응은 AI가 처리하고, 저는 자주 터지는 예외의 원인을 없애서 같은 문의가 다시 들어오는 비율을 3분의 1로 줄이겠습니다."

오른쪽 줄들의 공통점이 보이실 거예요. 전부 "제가 이걸 지킵니다"가 아니라 "이게 몇 배가 됩니다"로 끝납니다. 그리고 자랑이 아니라 약속이라서, 읽는 사람이 나중에 확인할 수 있어요.

지금 재고 있는 숫자가 없다면 목표부터 지어내지 마세요. 2주든 한 달이든 현재 수준을 먼저 재는 것으로 시작하시면 됩니다. 근거 없는 목표를 적는 것보다, "지금 이걸 재고 있고 다음 달에 이렇게 바꿔보겠습니다"가 훨씬 설득력 있습니다.

AI를 능숙하게 다루면 대체되지 않는 사람이 되나요?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도구를 잘 다루는 것과 자리의 근거를 갖는 건 다른 문제예요. 이 일이 원래 무엇을 위한 일인지, 무엇이 더 나은 결과인지를 고를 수 있어야 그 문장이 채워집니다.

한국 데이터에서도 이 간격이 보입니다. 나우앤서베이가 2026년 5월 직장인 1,000명을 조사한 AI 시대 대한민국 직장인 리포트에 따르면, IT·개발직은 87.6%가 업무에 AI를 쓰고 90.7%가 효율이 올랐다고 답했는데, 동시에 70.1%가 높은 불안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조사한 12개 직종 중 AI를 가장 잘 쓰는 집단이 대체 불안도 가장 높았어요. 온라인 패널 조사라 그대로 일반화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잘 쓰면 안전해진다"가 자동으로 성립하지는 않는다는 신호입니다.

조금 더 직접적인 실험도 있습니다. Management Science에 실린 케냐 소상공인 640명 대상 5개월 현장실험인데요. 참가자들에게 GPT-4 기반 AI 멘토를 붙여줬더니 평균 효과는 사실상 0이었습니다. 그런데 원래 성과가 높던 사람들은 20% 넘게 좋아졌고, 성과가 낮던 사람들은 오히려 10%가량 나빠졌어요. 연구진은 두 집단 모두 AI에 물어봤지만, 어떤 문제를 들고 갔는지와 일반적이거나 틀린 조언을 걸러낼 수 있었는지가 결과를 갈랐다고 설명합니다.

물론 이걸 "원래 잘하던 사람만 AI 덕을 본다"로 넘겨짚으면 안 됩니다. 전문 글쓰기 과제 연구콜센터 현장 연구에서는 반대로 원래 성과가 낮던 사람들이 더 크게 좋아졌거든요. 케냐 소상공인과 한국 직장인을 같은 집단으로 놓을 수도 없고요.

서로 반대처럼 보이는 이 연구들이 함께 말하는 건 하나입니다. AI는 누구에게나, 어떤 일에서나 같은 폭으로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판단은 AI보다 정답을 잘 맞히는 능력이 아니에요. 어떤 일을 AI에 넘기고 어떤 일은 넘기지 않을지 고르고, 나온 결과가 원래 목적에 맞는지 확인하고, 아니면 멈추는 것까지가 판단입니다.

그래도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은 남지 않나요?

남습니다. 다만 그 자리는 "AI가 아직 못 해서" 남는 게 아니라, 결과에 책임지고 필요하면 개입할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해서 남습니다.

EU AI Act 제14조는 고위험 AI 시스템이 자연인의 실효적인 감독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그리고 그 감독자는 시스템의 능력과 한계를 충분히 이해하고, 필요할 때 개입하거나 중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못 박았어요. 이건 AI가 실력이 모자라다는 얘기가 아니라, 최종 책임이 걸리는 자리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요구입니다. 기술이 좋아진다고 사라지는 요구가 아니라서, 목록형 방어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기업들도 같은 방향으로 되돌아오고 있습니다. 클라르나는 AI 상담 도입 성과를 크게 발표했다가 15개월 만에 비용에만 집중하느라 품질이 떨어졌다며 사람을 다시 채용했습니다. 지금은 정형 문의는 AI가, 판단이 필요한 문의는 사람이 맡는 쪽으로 정리됐어요. 이 과정은 포브스 보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봐라, 사람만의 영역은 안전하다"로 돌아가면 다시 같은 함정입니다. AI가 내놓은 답을 이해하지 못한 채 승인 버튼만 누르는 사람도 서류상으로는 감독자예요. 실무에서 human oversight가 도장 찍는 절차로 형해화된다는 비판이 제14조에 계속 따라붙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조문이 "AI를 아는 사람만 살아남는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조문이 요구하는 게 자리가 아니라 능력이라는 건 분명해요. 시스템의 한계를 이해하고, 틀렸을 때 반박하고, 필요하면 멈출 수 있어야 한다고 적혀 있으니까요. 그러니 사람이 남는다는 사실만으로는 내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반론을 끝까지 따라가도 결국 "그래서 나는 무엇을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나"로 돌아옵니다.

한 가지는 정직하게 짚고 갈게요. 초급 자리가 얇아진 게 전부 AI 때문인지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미국·영국·캐나다·호주의 채용 기록을 분석한 The Broken Ladder는 AI 노출도와 원격근무 노출도를 함께 넣으면 원격근무 쪽 영향만 남는다고 보고했고, 스웨덴 전 국민 등록 데이터 분석은 AI가 전체 일자리 수를 줄였다는 증거는 거의 없고 바뀐 건 누가 뽑히느냐라고 정리합니다. 다만 원인이 무엇이든 우리가 준비할 문장은 달라지지 않아요. 이미 조직은 사람을 더 쓰는 이유와 AI를 붙였을 때의 결과를 같이 묻고 있으니까요.

시장도 그 방향으로 값을 매기고 있습니다. 실제 고용이 아니라 채용공고 문구를 분석한 자료라는 한계는 있지만, PwC의 2026 Global AI Jobs Barometer를 보면 AI에 노출된 초급 직무는 2019년보다 35% 늘었고 그 외 초급 직무는 10% 줄었습니다. 그리고 AI에 노출된 초급 직무는 판단이나 리더십 같은 역량을 요구할 확률이 7배 높았고요. 초급 자리조차 판단을 요구하는 쪽만 늘고 있다는 뜻입니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볼게요. 대체되느냐 아니냐를 붙들고 있으면 계속 방어만 하게 되고 답이 안 나옵니다. 회사가 봐야 할 것도, 우리가 봐야 할 것도 하나예요. 이 일을 얼마나 더 잘하게 만들었나. 나의 가치는 거기서 증명됩니다.

오늘 가장 자주 하는 일 하나를 놓고, 아래 두 문장을 나란히 써보세요.

"이건 AI가 못 합니다."

"AI를 써서 저는 여기까지 만듭니다."

어느 쪽이 할 말이 더 많은지, 그것만 보셔도 됩니다. 두 번째 문장이 잘 안 채워진다면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에요. 내가 하는 일이 원래 누구의 무엇을 바꾸기 위한 일이었는지 들여다볼 기회가 적었던 것에 가깝습니다. AI에 넘길 일을 하나 지우고, 그 자리에 밖에서 확인될 결과를 하나 적어보시면 문장이 생각보다 빨리 채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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